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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
  • 가정 이곡(稼亭 李穀, 1298~1351)
    고려 말엽의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 한산출생. 한산이씨 시조인 윤경(允卿)의 6대손으로, 찬성사 자성(自成)의 아들이며, 색(穡)의 아버지이다.
    1317년(충숙왕 4) 거자과(擧子科)에 합격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 되었고, 1320년(충숙왕 7) 문과에 급제하였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정동성(征東省)향시에 수석으로 합격, 이듬해 전시(殿試)에 차석으로 급제하였는데, 이때 지은 대책(對策)을 독권관(讀卷官)이 보고 감탄하였다.
    한림국사원검열관(翰林國史院檢閱官)이 되어 원나라에서 벼슬하며 그곳 문사들과 교유하였다. 1334(충숙 복위3)년 37세에 본국으로부터 학교를 진흥시키라는 조서를 받고 귀국하여 가선대부 시전의부령직보문각(嘉善大夫 試典儀副令直寶文閣)을 제수받았다.
  • 본국에서 판전교사사, 예문관제학 동지춘추관사 상호군, 밀직부사·지밀직사사를 거쳐 정당문학(政堂文學)·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가 되고 뒤에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졌다. 이제현(李齊賢) 등과 함께 민지(閔漬)가 편찬한 《편년강목 編年綱目》을 증수하고 충렬·충선·충숙왕 3조(三朝)의 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다시 원나라에 가서 중서성감창(中書省監倉)으로 있다가 귀국하였으나, 충정왕이 즉위하자 공민왕의 옹립을 주장하였으므로 신변에 불안을 느껴 관동지방으로 주유(周遊)하였다.
    1350년(충정왕 2) 원나라로부터 봉의대부 정동행중서성좌우사낭중(征東行中書省左右司郎中)을 제수받았고, 그 이듬해 죽었다. 그는 일찍이 원나라에서 문명을 떨쳤고 원나라의 조정에 고려로부터 동녀를 징발하지 말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 몽고 침입이후 고려는 처녀를 받쳐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곡이 상소를 하여 이를 폐지하게된 것이다.
    그는 중소지주 출신의 신흥사대부로,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음으로써 고려에서의 관직생활도 순탄하였다. 그는 유학의 이념으로써 현실문제에 적극적으로 대결하였으나, 쇠망의 양상을 보인 고려 귀족정권에서 그의 이상은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그의 여러 편의 시에 잘 반영되어 있다.
    《동문선》에는 100여편에 가까운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죽부인전 竹夫人傳〉은 가전체문학으로 대나무를 의인화하였다. 그밖에 많은 시편들은 고려 말기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구체적인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저서로는 《가정집》 4책 20권이 전한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 차마설(車馬說) -「가정집(稼亭集)」-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으므로 혹 빌려서 타는데, 여의고 둔하여 걸음이 느린 말이면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감히 채찍질을 가하지 못하고 조심조심하여 곧 넘어질 것같이 여기다가, 개울이나 구렁을 만나면 곧 내려 걸어가므로 후회하는 일이 적었다. 발이 높고 귀가 날카로운 준마로서 잘 달리는 말에 올라타면 의기양양하게 마음대로 채찍질하여 고삐를 놓으면 언덕과 골짜기가 평지처럼 보이니 심히 장쾌하였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위태로워서 떨어지는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아! 사람의 마음이 옮겨지고 바뀌는 것이 이와 같을까? 남의 물건을 빌려서 하루 아침 소용에 대비하는 것도 이와 같거든, 하물며 참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랴.
    그러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나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 은총과 귀함을 누리며, 아들은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지아비로부터, 비복(婢僕)은 상전으로부터 힘과 권세를 빌려서 가지고 있다. 그 빌린 바가 또한 깊고 많아서 대개는 자기 소유로 하고 끝내 반성할 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도 혹 잠깐 사이에 그 빌린 것이 도로 돌아가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외톨이가 되고, 백승(百乘)을 가졌던 집도 외로운 신하가 되니, 하물며 그보다 더 미약한 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맹자가 일컫기를 "남의 것을 오랫동안 빌려 쓰고 있으면서도 돌려주지 아니하면 어찌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아닌 줄 알겠는가?" 하였다.』